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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이다.
앞서 작성한 것은 모두 체력적인 것에 관했다면 이번에 작성할 내용은 마음에 관한 것이다.
봉사와 심리상담. 이 두 가지는 나의 마음을 많이 바뀌게 해주었다. 매주는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참석한 봉사와 반년 넘게 꾸준하게 받았던 심리상담.
우선 봉사부터 이야기해보자.
예전부터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나는 유기묘 봉사를 해보고 싶단 마음이 컸다. 그렇게 마음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코로나가 터져 원래 인원들만 봉사에 참여할 수 있거나 봉사가 많이 닫혀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봉사를 하고 싶단 마음에 정보를 검색하던 중 한 봉사단체를 알게 되었다. 그게 벌써 1년이 넘었다. 23년 5월 첫 유기묘 봉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봉사를 접했다. 유기묘, 유기견, 산타 봉사, 집수리, 연탄봉사 등 쉽게 접해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봉사가 마음을 바뀌게 해준 건 운동모임과 같은 맥락으로 출발했다. 봉사모임을 가보니 처음 오신 분부터(나포함) 많게는 10년이 넘게 하신 분도 계셨다.. 다들 자신의 본업이 있고(심지어 본업도 사회복지사인 분도 계셨다) 주말임에도 시간을 내어 오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너무 놀라웠고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나가다 보니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몇 가지 말해보자면 '연탄봉사' 와 '산타 봉사' 가 되겠다.
연탄봉사를 하면서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서울 사람이 아니라서 더 그렇게 느꼈던걸 지도 모르겠다. 분명 같은 서울이었다. 시골 사람이었던 나에겐 서울은 다 부자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큰 도로를 하나로 연탄공급이 필요한 집들과 끝이 보이지 않는 매우 높은 아파트가 내 눈앞에 나란히 보였다. 참으로 이상했고 정말 살짝만 고개를 돌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그 도움을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음은 산타 봉사다.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면 대한민국이 곧 망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곤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인류애가 바닥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런 인류애를 다시 충전시켜준 봉사였다.
사랑의 몰래 산타 봉사자 총 1,004명, 크리스마스이브에 진행되었던 일이었다. 1,004명이라는 인원들이 크리스마스이브를 반납하고 아이들을 위해 한 장소에 모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심지어 그전부터 아이들의 선물을 포장하고, 율동을 연습하고, 부모님과 연락하는 등 추가적인 일이 많기 때문에 하루 일정이 아니었다.
나는 율동을 추는 사람이었다. 30년 인생을 살면서 내가 어린아이 앞에서 율동을 추다니! 처음 집에선 정말 부끄러워 죽을 뻔했다. 심지어 아이들도 쑥스러웠는지 미동도 없어 더욱더 뻘쭘했다. 그러나 그 후 몇몇 집에선 아이들이 따라서 추면서 폴짝폴짝 뛰는 데 너무 예쁘고 귀여웠다.
"나는 산타를 언제부터 안 믿었더라? "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전에 문득 본 사진으로는 유치원 선생님께서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나를 무릎에 앉혀둔 적이 있던 것 같다. 집마다 약 10분 정도 머무르면서 춤을 추고,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덕담도 해주었다. 나이가 좀 있는 친구들은 "산타할아버지 아니죠?! 머리가 왜 검은색이에요!"라고 의심하는 친구들도 있긴 했었지만 그것마저도 너무 귀여워 보였다.
봉사를 시작한 것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넌지시 봉사에 대해 물어보고 관심 있으면 바로 봉사 링크를 드리곤 했다.
짧게 쓰고 싶었지만, 아주 많이 줄인 게 이 정도라니, 그만큼 봉사는 많은 것을 변화시켜주었다.
두 번째로 심리상담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까진 장작 10년이 걸렸다. 이젠 정말 아무렇지 않기에 그냥 "코로나 두 번이나 걸렸던 썰"(실화다) 처럼 풀어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젠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그 어떤 마음도 그냥 감기 같은 거라고 부끄럽거나 숨길 게 아니라고.
나는 국가에서 진행했던 청년 마음건강사업을 통해 약 반 년간 두 분에게 상담을 진행했다. 한 분은 오프라인으로 한 분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상담이나 치료는 10년간 꽤 여러 번 받았다. 단 문제가 되었던 것은 꾸준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에 정말 꾸준히 받으려고 노력했다. 일정을 미리 잡고 큰일이 없는 이상 무조건 나갔다.
꾸준함은 통했다. 꾸준함은 어디에나 적응되는 소금 같은 단어인 거 같다.
두 선생님 모두 훌륭하신 분이었다. 한 분은 과거의 나에게 사과하고 보듬어주어 현재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한 분은 현재 나에게 미래를 위한 결단력을 불어넣어주셨다. 그렇게 반 년간 나는 지금까지의 30년을 정리하고 미래를 계획 할 수 있었다.
이후로 정말 뭐,, 대회나 봉사 이런 것들의 콜라 보일 수도 있지만 우울한 생각을 전혀 한 적이 없었다.
예전같으면 "다 포기하고 싶다. 왜 굳이 이렇게 해야 하지?" 라고 점점 복잡하고 우울하게 생각했던 것도 그냥 "아~!힘들다! 집에 가고 싶구먼?" 이라고 생각하고 마는 사람이 되었다. 난 이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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